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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불꽃을 쫓다』 – 가장 정세랑다운 히로인, 세상을 비추는 불꽃이 되다

by jaewon7010 님의 블로그 2025. 7. 13.

 

불꽃을 쫓다

 

 

어떤 작가의 이름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문장이 있다. "이 사람은 사람을 믿는다." 정세랑이라는 이름은 지금까지 한국 문학에서 보기 드문 방향성을 보여줬다. 일상의 마법 같은 장면들, 다정한 세계관,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믿음. 그런 정세랑이 새롭게 내놓은 장편소설, **『설자은, 불꽃을 쫓다』**는 그간 그녀가 품고 있던 이상과 열망이 집약된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부터 인상적인 설자은. 그녀는 평범하지만 동시에 특별하다. 삶에 애착을 가지며, 자신이 속한 사회에 책임감을 느끼고, 무엇보다 ‘불꽃’을 좇는 열정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단지 한 여성의 성장담을 넘어서, 지금 우리 사회가 잊지 말아야 할 '연대'와 '의지', 그리고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하게 된다.


“불꽃을 쫓는 사람들”의 초상

설자은은 소방청 공무원이다. 사람들의 생명을 구조하고, 위험한 현장을 누비는 그녀의 일상은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지 구조 활동이라는 외형적인 모습만을 다루지 않는다. 정세랑은 설자은이라는 인물을 통해 ‘불을 다루는 일’이란 결국 ‘삶을 다루는 일’임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자은이 겪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여성 소방관으로서의 차별, 물리적 한계, 정서적 피로감, 그리고 때로는 부당한 사회 시스템. 하지만 그녀는 그 모든 현실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이 책에서 정세랑은 다시 한 번 ‘버티는 것의 미학’을 말한다. 고통 속에서도 인간을 구하려는 의지를 놓지 않는 설자은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작은 불꽃’과도 닮았다.


현실과 이상 사이, 정세랑의 문학적 균형감각

정세랑의 장점은 늘 현실과 이상 사이의 적절한 줄타기를 해낸다는 점이다. 『설자은, 불꽃을 쫓다』에서도 그녀는 비현실적인 낙관에 기대지 않는다. 소설 속에는 구조 활동의 현장감, 피로감, 부상, 트라우마, 희생 같은 냉혹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는 믿을 수 있고, 바뀔 수 있으며, 다정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놓지 않는다.

자은은 단순히 강한 여성이 아니다. 그녀는 상처 입고, 흔들리며, 불안해하면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다. 정세랑은 이런 인물을 통해 ‘영웅’이란 존재가 아닌,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 사람의 용기를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작품의 진짜 메시지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매일 불을 끄고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의 작지만 꾸준한 선택이다.”


여성 서사, 그리고 연대의 힘

정세랑은 일관되게 여성 서사와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작가다. 『설자은, 불꽃을 쫓다』 역시 그 흐름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자은 주변에는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여성 동료 소방관, 취재 기자,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는 시민들.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은과 연결되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이들의 관계는 경쟁이나 질투가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연대’로 그려진다. 특히 여성의 육체 노동과 감정 노동, 가사 노동이 어떻게 사회에서 투명하게 다뤄지고 있는지를 직시하는 대목들은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구조와 구원의 경계에서

『설자은, 불꽃을 쫓다』는 구조 활동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지만, 결국 그것은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구조를 필요로 하는 존재이며, 동시에 누군가를 구할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자은이 구조 활동을 통해 구해내는 건 단지 육체적인 생명만이 아니다. 그녀는 누군가의 희망이 되고, 존재를 인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메시지는 특히 팬데믹 이후, 삶과 죽음, 연결과 단절을 더욱 뼈아프게 느낀 현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소설은 묻는다. "당신은 누구의 불꽃이 되어본 적이 있나요?"


‘가슴이 뜨거워지는’ 소설

이 책은 분명히 독자에게 감정을 요구한다. 어떤 장면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어떤 순간에는 자은의 선택에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이는 정세랑의 문장력, 인물 구성, 이야기 전개가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읽는 이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나는 지금 누구를 돕고 있는가? 내 삶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내가 좇는 불꽃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근원적인 질문을 떠오르게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단순한 소설을 넘어선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

『설자은, 불꽃을 쫓다』는 오늘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모든 ‘보통의 용기’를 위한 책이다. 정세랑은 이 작품을 통해 구조대원이라는 흔히 조명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삶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동시에 이 소설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진다.

불꽃을 쫓는 자의 삶은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불꽃을 좇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고, 사회를 지탱하며, 미래를 밝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자은은 단순한 주인공이 아니다. 그녀는 ‘불꽃의 상징’이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수많은 자은들의 얼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