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건강 불평등, 구조적 차별에 대한 날카롭고도 따뜻한 시선
우리는 종종 질병과 고통을 개인의 문제로 여깁니다. 하지만 누군가 병들고, 다치고, 사라지는 그 순간의 이면에는 언제나 사회 구조가 있습니다.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바로 이 사회적 시선으로 고통을 바라보는 책입니다. 보건학자이자 사회역학자인 그는 데이터를 통해 증명하고, 사례를 통해 설득하며, 우리의 무관심한 일상을 흔들어 놓습니다.
책 소개: 개인의 고통은 사회의 반영이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김승섭 교수가 2017년에 출간한 에세이입니다. 그는 **사회역학(Social Epidemiology)**이라는 학문을 통해 질병과 죽음을 분석합니다. 이 책은 의학과 통계, 그리고 감정이 공존하는 글입니다. 단순한 과학서도 아니고, 감성적인 에세이만도 아닙니다. 차별과 배제, 침묵 속에서 병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건강은 사회적이다"**라는 사실을 독자에게 각인시킵니다.
책의 주요 내용: 통계 속에 숨은 사람들
책의 핵심 주제는 “질병은 사회적 맥락을 가진다”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 콜센터 노동자들: 반복된 감정노동과 감시에 시달리며 우울과 불안을 겪지만, 회사는 이를 개인의 문제로 취급합니다.
-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 불안정한 고용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 건강은 나빠지고, 이들의 아픔은 통계에 잡히지 않습니다.
- 성소수자와 사회적 소수자들: 자살률과 정신질환 발병률이 높은 이유는 단순히 ‘심리적 취약성’이 아니라, 사회적 낙인과 배제입니다.
김승섭 교수는 이러한 사례를 통해 ‘개인의 건강’이 사실은 ‘사회적 결정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말합니다. 고용 형태, 소득 수준, 성 정체성, 인종, 교육 수준 등은 모두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입니다.
데이터는 말이 없지만, 사람을 품을 수 있다
이 책의 특별한 점은 ‘과학자의 시선’과 ‘인간적인 마음’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철저히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그 데이터 뒤에 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세심히 들여다봅니다.
“통계에는 눈물이 없다. 하지만 그 숫자 뒤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다.”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종종 뉴스에서 ‘자살률’, ‘사망률’, ‘발병률’ 같은 숫자를 마주하지만, 그 숫자들이 지닌 고통과 현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합니다. 김승섭 교수는 그러한 숫자에 온기를 불어넣습니다.
인상 깊었던 구절과 그 의미
책 곳곳에서 강한 울림을 주는 문장들이 등장합니다.
- “우리는 아픈 이들을 보며 ‘왜 아프냐’고 묻는다. 그러나 더 먼저 물어야 할 것은 ‘왜 그들은 보호받지 못했는가’이다.”
- “고통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 다만 그것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함께 감당될 때 의미가 된다.”
이러한 문장들은 우리가 아픔을 대하는 방식에 질문을 던집니다. 아픔은 공감의 대상이자, 때론 행동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는 것.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게 만드는 문장들입니다.
독자로서 느낀 점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는 다소 학문적이고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그 문장들이 가슴을 파고들었습니다. 무심코 지나쳤던 사회적 약자들의 현실, 그리고 그 아픔을 둘러싼 구조의 문제들이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개인적인 경험을 되짚어보게 되었습니다. 직장 내에서 감정노동을 감내하던 동료, 병가를 내기 어려워 힘들어하던 계약직 동료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의 고통에 대해 무관심했던 나 자신이 떠올랐고, 그런 무관심이 사회 구조를 강화시킨다는 점에서 스스로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왜 지금 이 책이 중요한가?
우리는 팬데믹, 경제 위기, 고령화 사회 등 복잡한 문제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은 단순한 의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복잡하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그 복잡한 고리를 풀어주는 열쇠와 같은 책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질병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됩니다. 아픔을 함께 이해하고, 그것이 사회적 책임과 연결될 때, 비로소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집니다.
결국. . .아픔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 책은 단순히 ‘공감하자’는 감성적인 메시지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나아가 행동하자, 질문하자, 구조를 바꾸자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던집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그 아픔을 길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모든 시민, 특히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하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