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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 알랭 드 보통, 현대인의 영혼을 들여다보다

by jaewon7010 님의 블로그 2025. 6. 29.

불안

 

 

불안은 언제부터 우리의 마음을 잠식했을까?
언제부터 우리는 남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기 시작했을까?
철학자이자 작가인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은 그의 책 『불안(Status Anxiety)』을 통해 이 질문에 정면으로 다가간다.
이 책은 현대인이 일상적으로 느끼는 불안, 특히 **‘지위 불안’**에 대해 철학, 역사, 문학, 예술을 넘나들며 날카롭고도 따뜻하게 분석한다.


‘불안’이라는 감정, 왜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할까?

이 책의 핵심은 **‘지위 불안(status anxiety)’**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우리가 사회적 인정, 성공, 자산, 명예 등 외부의 기준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측정하며 느끼는 불안이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 불안을 느끼는가?
시험 결과를 받아들 때, 친구의 성공 소식을 들을 때, SNS에서 누군가의 화려한 삶을 볼 때.
그 순간마다 우리는 ‘나’의 위치를 다시 점검하게 되고,
그 비교에서 뒤처졌다고 생각될 때, 불안은 마음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현대 사회에서 불안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실패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공포다.”

알랭 드 보통은 이 불안의 근원을 단순한 심리학적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는 이 불안이 근대 사회 구조 전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밝힌다.


과거에는 없었던 불안, 왜 현대에 더 심해졌을까?

우리가 ‘불안’이라는 감정을 유독 자주 느끼는 것은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과 관련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과거 봉건 사회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비교한다.

봉건 사회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고정되었다.
물론 계급사회가 정의롭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확신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은 덜했다.

반면 현대 사회는 계속해서 ‘가능성’을 강조한다.
‘너도 CEO가 될 수 있다’, ‘성공은 노력 여하에 달렸다’는 담론은 성취하지 못한 사람에게 무력감과 자기비난을 안긴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그 자유 때문에 더 불안하다.”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노력과 재능을 중시하지만,
동시에 ‘실패는 전적으로 너의 탓’이라는 비난으로 쉽게 이어진다.
그 결과,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살게 된다.


비교, 인정 욕구, 그리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의 또 다른 원인으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 욕구를 든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고,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을 통해 자기 존재를 평가한다.

그는 인간이 느끼는 불안의 이면에는
사실상 사랑받고 싶은, 존중받고 싶은, 소중한 존재로 여겨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고 말한다.

“불안은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사람의 감정이다.”

이 말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이다.
불안은 단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존재가 무의미해질까 하는 깊은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철학, 예술, 종교에서 찾은 불안의 해법

알랭 드 보통의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문제를 진단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철학과 문학, 예술, 종교 등 다양한 영역을 통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시선을 제안한다는 점이다.

  1. 철학적 관점 – 고대 스토아 철학자들은 외부의 인정이나 성공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다스리는 데 집중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상황에 집착하기보다,
    스스로 통제 가능한 삶의 태도에 집중할 때 불안은 줄어든다.
  2. 문학적 관점 – 셰익스피어나 괴테, 카프카 등의 작품에서
    인간은 늘 불안한 존재로 그려진다.
    이는 우리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해준다.
  3. 종교적 관점 – 종교는 인간 존재의 고유한 가치를 강조한다.
    가톨릭, 불교, 이슬람 모두 ‘인간은 신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전제한다.
    이는 외부의 성취나 지위와 관계없이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는 감각을 일깨운다.

소비주의와 미디어, 불안을 증폭시키는 기계

알랭 드 보통은 현대 사회에서 불안을 키우는 외부 자극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광고, 소비주의, SNS 미디어를 꼽는다.

광고는 끊임없이 부족함을 상기시키고,
SNS는 타인의 성공을 ‘보정된 이미지’로 포장해 보여준다.
이런 환경은 우리가 지금 이대로 충분하다는 감각을 마비시킨다.

“당신은 이 가방이 없다.
그러니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다.”

그는 이런 메시지들에 대해 ‘의심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구조와 메시지를 인식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불안을 이겨낼 수 있을까?

『불안』은 이 물음에 대해 여러 가지 해법을 제시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다음의 태도를 강조한다.

  • 자기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라.
    타인의 기준이 아닌, 자신의 가치 기준을 세워야 한다.
  • 인정 욕구를 절대 부정하지 말고, 의식적으로 다뤄라.
    인간은 사랑받고 싶어 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그 욕구를 자비롭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 세상의 소음에서 한 발 물러나라.
    독서, 사색, 명상, 예술 감상 등을 통해
    내면을 풍성하게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 철학적 거리두기
    모든 일은 일시적이고, 실패도 삶의 일부임을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 불안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

『불안』은 단순한 자기계발서도 아니고, 딱딱한 철학서도 아니다.
이 책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겪는 마음의 혼란을 문명적이고 통찰력 있게 들여다본다.

알랭 드 보통은 불안을 '극복해야 할 적'이 아닌
이해하고 다루어야 할 감정으로 본다.
불안은 삶의 일부이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태도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삶은 훨씬 더 단단해질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불안은 괴로움이 아니라, 삶을 더 깊게 사유하게 하는 기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