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보다 낮은 인간이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황모과 작가의 『언더 더 독』은 단순한 디스토피아 소설이 아니다. 이 작품은 유전자 개량 사회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주며, 인간의 존엄성, 시스템의 차별, 생명의 정의를 묻는 사회철학적 SF다. 작가 특유의 서늘하면서도 간결한 문장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냉정하게 드러내며, 독자를 조용히 벼랑 끝으로 데려간다.
줄거리 요약 – ‘개’ 아래의 인간, 언더독
『언더 더 독』의 배경은 유전자 개량 기술이 극단적으로 발전한 근미래 사회다. 이 사회에서 ‘개량된 인간’은 우월한 유전자를 지닌 계층으로, 노동력과 지능, 감성에 이르기까지 최적화되어 있다. 반면, 개량되지 않은 일반 인간들은 점점 시스템 밖으로 밀려나 ‘언더독(Under the Dog)’이라 불리는 하위 존재로 분류된다.
주인공 ‘도윤’은 개량되지 않은 채 태어나 ‘언더독’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그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실험견들을 돌보는 하급 노동자로 일하며, 유전적으로 설계된 개들과 함께 살아간다. 그러나 이 개들은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인간보다 높은 유전자 등급을 받은 존재들이다.
도윤은 차츰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사건들과 마주하게 되고, 결국 ‘개’와 ‘인간’의 경계에 놓인 어떤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인간의 정의를 다시 묻는 서사
『언더 더 독』은 제목 그대로 ‘개 아래’ 존재로 분류된 인간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묻는다. 작품 속에서 개들은 인간보다 유전자가 우수하며, 사회적 권위까지 부여받는다. 그들은 감정을 이해하고, 업무를 처리하며, 일부는 법적 소유권까지 지닌다. 반면 언더독들은 자신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조차 의심받으며, 철저히 감시되고 통제된다.
작가는 이 설정을 통해 묻는다.
- 인간의 본질은 유전자인가, 기억인가, 혹은 인식인가?
- 우리가 차별받지 않을 이유는 오직 ‘우수한 구조’에 있는가?
- 감정과 존엄은 과학이 아닌 제도에 의해 설계되는가?
이러한 물음은 단순히 공상과학적 상상이 아닌, 현대 사회의 기술 편향적 윤리를 비판하는 메타포로 작용한다.
생명공학과 계급: 과학은 중립적인가?
황모과 작가는 『언더 더 독』을 통해 유전자 개량이 만든 계급사회의 위험성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우리가 기술을 중립적이라고 믿는 순간, 그 기술은 지배자의 도구가 되어 약자를 더 깊이 짓누를 수 있다.
이 소설 속의 개량 기술은 단지 육체적 능력 향상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사회적 신분, 시민권, 생존권을 좌우한다.
특히 인상적인 장면은, 도윤이 관리하는 ‘실험견’ 중 일부가 실험 대상이 아닌 ‘관찰자’로 자신을 인식하며, 도윤의 말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장면이다. 그 순간, 독자는 이 소설이 인간과 동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강자와 약자의 구조임을 절실히 느낀다.
황모과의 문체와 시선
황모과 작가의 문체는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감정을 격하게 끌어올리기보다는 냉정한 관찰자의 시선을 유지한다. 이는 작품의 내용과 매우 절묘하게 어울린다. 세부적인 감정 묘사를 배제하면서도 독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건, 황모과가 구조의 부조리함을 감정에 의존하지 않고 구조 자체로 말하게 하기 때문이다.
도윤은 자신의 삶이 어떤 의미에서 왜곡되었는지를 안다. 하지만 그에 저항할 수 없으며,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매일을 살아간다. 그리고 이 ‘살아냄’의 태도가 오히려 모든 독자에게 더 큰 충격을 안긴다.
왜 지금 『언더 더 독』을 읽어야 할까?
이 소설은 단지 미래 사회에 대한 경고가 아니다. 이 작품 속의 ‘언더독’은 지금도 존재한다. 능력 중심주의, 스펙 경쟁, 유전자 분석, 데이터 기반 채용, 그리고 끝없이 사람을 평가하고 분류하는 사회는 이미 현실이다.
황모과는 말한다.
“언더독은 어쩌면 당신일지도 모릅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존엄은 기술로 증명할 수 없다. 인간은 그 존재만으로 존엄해야 하며, 누구도 누구의 위에 서선 안 된다는 윤리적 외침. 『언더 더 독』은 이 외침을 가장 조용하고도 치밀한 방식으로 전달하는 소설이다.
마치며: 존재의 경계에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
『언더 더 독』은 쉽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한 장, 두 장 넘길수록 독자는 점점 익숙해진다. 차가운 세계에, 침묵하는 주인공에게, 개 아래 존재로 분류된 인간의 처절한 현실에.
그 익숙함이 무서운 이유는, 이것이 단지 소설 속 세상이 아니라는 자각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당신은 아마도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것이다.
"나는 지금, 어떤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가?"
그리고 더 나아가, "나는 누구를 '언더 더 독'으로 보고 있었는가?"
그렇기에 『언더 더 독』은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며, 우리 모두가 한 번은 통과해야 할 윤리적 미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