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역사는 살아 있다 –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by jaewon7010 님의 블로그 2025. 6. 30.

 

역사는 살아 있다

 

우리는 역사라는 단어를 참 많이 사용합니다.
“역사적인 날이다”, “역사가 반복된다”, “역사 앞에 당당하자” 등의 표현처럼
‘역사’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고 현재와 미래까지 관통하는 무게감 있는 단어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과거의 사실 나열을 ‘역사’라고 할 수 있을까요?
혹은 역사는 ‘객관적 진실’이어야만 할까요?

E.H. 카는 그의 명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이러한 질문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는 역사가 ‘객관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라 말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역사학의 입문서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역사란 단순한 사실의 집합이 아니다

E.H. 카는 “역사란 과거의 사실들이 아니라, 역사가가 선택한 사실들의 기록”이라고 단언합니다.

이는 역사를 ‘객관적 사실의 축적’으로 보는 전통적 시각을 뒤흔드는 주장입니다.
예컨대, 수많은 전투 중에 어떤 전투를 중요하게 다루고, 어떤 인물을 주목하느냐는
역사가의 관점, 사회의 가치관, 시대적 흐름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상대주의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는 어떠한 사실도 해석 없이는 ‘역사’가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역사는 언제나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와 사실, 두 축의 긴장

E.H. 카는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것은 **‘상호작용’과 ‘대화’**라는 표현입니다.
역사가 단순히 사실을 기록하는 기계가 아닌, 해석자이며 관찰자임을 명확히 합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 혁명을 다룰 때 마르크스주의자와 보수주의자의 시각은 확연히 다릅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혁명을 ‘계급투쟁의 승리’로,
보수주의자는 ‘혼란과 무질서’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은 동일하지만, 역사가가 누구이며 어떤 질문을 던졌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과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역사는 ‘중립적 사실’이 아닌
선택되고 해석된 이야기입니다.


객관성에 대한 도전

카는 역사학이 과학처럼 완벽히 객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역사가가 주관적으로 마음대로 해석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경고합니다.

그는 사실을 향한 정직함, 시대적 인식, 비판적 사고를 갖춘 역사가만이
‘상대적 객관성’을 실현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즉, 절대적 진리는 아니더라도, 합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석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통찰입니다.
SNS와 유튜브로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우리는 자주 ‘사실’과 ‘해석’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카의 지침처럼
누가 이 말을 했고, 어떤 관점을 담았는지 질문하는 태도를 배워야 합니다.


역사 속의 인간과 사회

카는 또한 역사에서 개인보다는 구조와 맥락을 중시합니다.

그는 ‘위대한 인물이 역사를 만든다’는 낭만적 시각에 반대하며,
개인이 어떤 시대적 배경 속에서 활동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이 대단한 전략가였던 것은 맞지만,
프랑스 혁명과 유럽의 변동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그를 만들어낸 조건이기도 합니다.

이런 관점은 오늘날 우리 삶을 바라보는 데에도 유효합니다.
한 개인의 성공이나 실패를 개인 탓으로만 환원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그가 속한 사회·문화·경제적 배경을 살피는 것—그것이 카가 말하는 역사적 태도입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사고

카의 역사관은 단순히 과거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는 역사를 현재의 질문에 답하기 위한 자원으로 바라봅니다.

“우리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현재를 통해 과거에 질문을 던지며,
그 과정에서 미래를 준비한다.”

이 말처럼, 역사는 기억이 아니라 해석이며,
정보가 아니라 통찰의 원천
입니다.

즉, 우리는 역사를 통해

  •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의 뿌리를 확인하고,
  •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역사적 사고란, 단순히 ‘암기’가 아니라
‘통찰과 성찰’의 도구라는 사실을 이 책은 강조합니다.


 – 역사는 생각하는 인간의 학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는 단지 역사학 전공자만을 위한 책이 아닙니다.
정보 과잉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비판적 사고와 해석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철학적 안내서입니다.

우리는 언제든 과거를 소환할 수 있지만,
그 과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는 우리의 해석과 질문에 달려 있습니다.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 사실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지를 고민하는 것—
그것이 E.H. 카가 말한 ‘살아 있는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