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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 하루만 기억되는 사랑의 기적

by jaewon7010 님의 블로그 2025. 6. 28.

하루만 기억되는 사랑의 기적

 

 

한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사랑이 하루만 지속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일본 작가 이치조 미사키의 베스트셀러 소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하루가 지나면 사랑했던 기억이 사라지는 소녀와, 그 소녀를 사랑하게 된 소년의 이야기다.
이 작품은 단순한 청춘 로맨스를 넘어, 사랑의 의미, 기억의 소중함, 존재의 흔적에 대해 고요하게 질문을 던진다.


‘선행성 기억상실증’ – 특별한 설정이 만든 특별한 이야기

이 작품의 중심에 있는 설정은 **‘선행성 기억상실증(anterograde amnesia)’**이다. 이는 새로운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지 못하는 질환으로, 잠에서 깨면 전날 있었던 일을 모두 잊게 된다.
주인공 마오리는 바로 이 병을 앓고 있다.
그녀는 매일 밤, 그날의 모든 기억이 사라지고,
다음 날 아침엔 노트에 적힌 메모를 통해 다시 하루를 시작한다.

이 특이한 설정은 단순한 극적 장치로만 기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삶과 사랑의 본질을 탐색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기억되지 않는 사랑'은 과연 진짜 사랑일까?
사라지는 기억 속에서도 사랑은 남을 수 있을까?

이치조 미사키는 이 질문에 대해 서두르지 않고, 잔잔하면서도 깊은 감정선으로 독자에게 답을 맡긴다.


익명의 고백에서 시작된 진짜 감정

주인공 ‘토루’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는 어느 날 친구들과 장난처럼 연애 고백을 하게 되고, 상대가 된 사람은 학교에서 ‘신비롭고 차가운 분위기’를 가진 여학생 ‘마오리’다.
그런데 뜻밖에도 마오리는 고백을 받아들이며 다음과 같은 부탁을 한다.

“내일 아침이 되면, 나는 너를 잊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매일 저녁마다 데이트하고,
그날의 일은 꼭 노트에 써줘.”

이 순간부터, 기억되지 않는 연애가 시작된다.

처음엔 장난처럼 시작된 관계였지만, 토루는 점차 마오리에게 진심으로 빠져든다. 그리고 매일 밤, 그녀가 다음 날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토루는 그녀를 위해 정성껏 ‘연애의 기록’을 남긴다.

그 기록은 마오리의 작은 노트 안에 한 줄씩 적힌 사랑의 역사이며, 동시에 두 사람의 시간이 존재했다는 증거다.


사라지는 기억, 사라지지 않는 감정

기억은 사라지지만, 사랑은 계속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점은 바로 이 모순적인 감정의 지속성을 섬세하게 묘사한다는 점이다.
마오리는 다음 날마다 노트를 읽으며 토루와의 관계를 ‘복습’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새로운 기억이자 반복된 체험이다.

토루는 마오리가 자신의 사랑을 느끼게 하기 위해 매일 작은 이벤트를 준비한다.
그 이벤트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함께 걷는 산책, 편의점 아이스크림, 공원에서 찍은 사진.
하지만 그 모든 일상들이 사랑을 채우는 퍼즐 조각이 된다.

그러나, 사랑은 반복된다고 해서 반드시 지속되지는 않는다.
기억의 부재는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한계에 부딪히게 한다.
이 작품은 그 과정을 무겁지 않게, 그러나 매우 절제된 감정선으로 그려낸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 소설의 제목은 굉장히 시적이다.
'사랑이 사라진다'는 표현은 단순히 이별이나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
여기서의 사라짐은 기억에서 지워지는 사랑, 존재하지 않게 되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제목 속에는 그럼에도 사랑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나는 다시 사랑할 거야.
내일 아침 너를 처음 만난 것처럼."

이러한 감정은 단순한 연애를 넘어,
가족의 사랑, 친구 간의 신뢰, 인간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 등 다양한 관계로 확장된다.


독자의 감정을 건드리는 문장들

이치조 미사키의 문장은 군더더기 없이 맑고 정직하다.
때로는 마치 시처럼, 때로는 편지처럼 다가온다.

“사랑이란 게 원래 이런 거라면,
기억이 사라진다고 해도
나는 괜찮을지도 몰라.”

이런 문장들은 단순한 문학적 장치를 넘어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사랑의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이 이 책이 전 세대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가장 큰 이유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 그러나 현실처럼 아프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이 소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서사를 지녔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두 주인공의 시간은 쌓이지 않고 흩어진다.
독자는 그 흩어지는 감정의 조각을 모으며 이 사랑의 끝을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토루가 내리는 깊고 아픈 결단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하루만 기억되는 사랑’이 우리에게 남긴 것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한편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이야기다.
기억이라는 기반이 없는 사랑은 필연적으로 취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바로 그 한계가,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진짜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 기억되지 않아도 계속되는 마음
  • 매일 처음처럼 시작하는 용기
  • 존재를 남기지 못해도 진심이었음을 믿는 신뢰

이것이 바로, 하루밖에 지속되지 않는 사랑이 영원보다 더 깊을 수 있는 이유다.

『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는 단순한 연애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사랑이라는 감정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붙들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며,
소멸의 시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감정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