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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 | 침묵 속에서 피어나는 인간의 존엄

by jaewon7010 님의 블로그 2025. 7. 8.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당신은 옳은 일을 하겠는가, 아니면 편한 길을 택하겠는가.”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 제목처럼 작고 조용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 짧은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세상에 침묵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침묵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많다. 이 작품은 그런 침묵의 한복판에서 선택의 윤리인간 존엄성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배경 – 침묵으로 뒤덮인 시대

소설의 무대는 1985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 뉴 로스(New Ross). 이 시기는 가톨릭교회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이었다. 특히 ‘마그달렌 수녀원’이라 불리는 기관들은 미혼모나 젊은 여성들을 격리시켜 강제 노동을 시키고, 사회로부터 그들을 배제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 속에도 그런 수녀원이 등장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 척하거나, 일부러 외면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 무심한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에게 작은 선택의 엄청난 무게를 고요하게 건넨다.


줄거리 요약 – 한 사람의 양심이 세상을 바꾼다

주인공 ‘빌 퍼럴(Bill Furlong)’은 석탄 상점의 주인이다. 그는 다섯 딸과 아내를 둔 가장이며, 평범하고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어린 시절, 미혼모였던 어머니는 당시 후견인이었던 부잣집 여주인 덕분에 거리로 내몰리지 않고 키워질 수 있었다. 그 기억은 그에게 은은한 고마움으로 남아 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퍼럴은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러 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문이 잠긴 방에 갇혀 있는 젊은 여성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억지로 노동을 하고, 추위에 떨며, 사람처럼 대우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퍼럴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는 가족과의 안락한 삶을 유지해야 하고, 지역사회에서의 평판도 중요하다. 게다가 수녀원은 종교와 사회 질서의 중심에 있다. 누구도 감히 그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선택해야 한다.
침묵할 것인가, 아니면 말할 것인가.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손을 내밀 것인가.


클레어 키건의 문체 – 침묵의 미학

클레어 키건은 '간결함'의 대가로 불린다. 그녀는 불필요한 설명이나 감정적 과장을 절대 하지 않는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역시 불과 100페이지 남짓의 짧은 분량이지만, 거기에는 한 편의 장편보다 더 깊은 사유와 정서가 응축되어 있다.

키건의 문장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 속에는 무게와 여운이 있다.
빌 퍼럴의 갈등과 내면의 떨림은 격한 감정 묘사 없이도, 독자의 마음을 흔든다. 그녀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하는 작가다.

예를 들어, 퍼럴이 수녀원 복도를 걸을 때, 작가는 그 발소리 하나로 독자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퍼럴이 내리는 결정은 조용하지만 확고하다. 이 침묵의 결단은 오히려 천둥 같은 울림을 만든다.


왜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윤리적 보편성을 다룬다. 아일랜드라는 특정 지역, 가톨릭이라는 종교적 맥락 속의 이야기이지만,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은 세계 어디에서나 통한다.

  • 우리는 왜 약자의 고통에 눈감는가?
  • 옳은 일을 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이유는 무엇인가?
  • 정의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있는 한 사람을 돕는 일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은 지금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도 유효하다.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대부분 외면한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그 외면 속에서, 조용히 말한다.
“이제는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고.”


빌 퍼럴, 평범하지만 위대한 이름

퍼럴은 영웅이 아니다. 그는 지식인도, 혁명가도 아니다. 그저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가 내린 선택은 세상의 균열에 손을 대는 일이다. 그의 결단은 단 한 사람을 위한 것이지만, 그 ‘한 사람’이 지닌 인간적 존엄성은 수많은 이들의 고통을 대변한다.

클레어 키건은 이 소설을 통해 말한다.
“세상을 바꾸는 건 거대한 권력도, 거창한 선언도 아니다.
단지 누군가의 사소한 용기일 뿐이다.”


마치며 – 사소한 것이 사소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문학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침묵과 결단의 이야기다.
그리 크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사람이 조용히, 그러나 용기 있게 나아가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크리스마스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것은 단지 시간적 장치일 뿐이다. 이 책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공감의 윤리’**와 **‘연대의 용기’**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독자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퍼럴과 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그 물음은, 우리의 삶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든다.
비록 사소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