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한 삶 속에서 찾아낸, 기이하고도 아름다운 자리
‘말이 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
‘설명할 수는 없지만, 느낄 수 있는 것.’
이 문장들은 『말은 안 되지만 홍학의 자리』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정해연 작가의 이번 산문집은 현실과 비현실, 이성과 감성의 경계에서 어긋난 감각들을 포착하는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홍학이라는 존재가 상징하듯, 이 책은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의 조각들을 천천히 펼쳐 보인다.
일상의 균열 속에서 피어나는 단어들
이 책은 명확한 서사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대신 정해연 작가는 자신의 감정과 기억, 경험의 편린들을 몽환적이고 감각적인 언어로 풀어낸다.
“이해받고 싶은 마음보다, 오해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책의 곳곳에는 이런 가만히 읽는 이를 멈춰 세우는 문장들이 등장한다. 감정의 결을 세밀하게 꿰뚫는 작가의 시선은 마치 거울처럼 독자의 내면을 비추기도 한다.
삶은 때때로 말이 되지 않는다.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 슬픔, 기쁨, 부끄러움, 열망 같은 것들이 우리를 휘감는다. 정해연은 그런 순간을 숨기지 않고 노출하며, 자신의 언어로 정직하게 기록한다. 그것이 이 책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다.
홍학의 자리는 어디에 있는가
‘홍학’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이다. 생태적으로도 독특한 특성을 지닌 홍학은, 늘 한쪽 다리를 들고 있는 자세로 유명하다. 작가는 이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자세에서 오히려 삶의 자연스러움을 발견한다.
삶은 균형 잡힌 두 다리로만 서 있지 않는다. 우리는 때로 한쪽 감정에 치우치고, 과거에 매달리거나 미래를 과도하게 걱정한다.
정해연은 말한다.
“홍학은 균형을 잡기 위해 한쪽 다리를 들고 있다. 그 자체가 그들의 방식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중심을 잡고 살아간다. 겉보기에 이상하거나 불완전해 보여도, 그것이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일 수 있다. 이러한 것이 때로는 다름으로 인한 나의 고민에 대한 위로가 된다.
이 책은 이러한 깨달음을 글 속에 숨겨 두고 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독자 스스로 그 의미를 발견하게 한다.
문장으로 위로받는 시간
『말은 안 되지만 홍학의 자리』는 마음이 시끄럽고, 생각이 산만할 때 조용히 읽기 좋은 책이다.
작가의 문장은 어렵지 않지만 가볍지도 않다.
삶의 상처, 관계의 갈등, 자아의 혼란 등을 무겁지 않게 풀어내면서도 깊은 울림을 남긴다.
독서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렇다.
“나는 내가 불안하다는 것을 너무 자주 잊는다.
잊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안은 언제나 가장 먼저 내 곁에 와 있었다.”
이 문장에서 느껴지는 무의식과 마주하는 용기는, 독자 스스로 자기 삶을 돌아보게 한다. 불안과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태도는 현대 사회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가치 중 하나다. 정해연은 그 가치를 지키고, 글로 기록한다.
나를 이해하기 위한 낯선 여정
이 책은 누군가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분명한 사건이나 전개 없이 감정의 흐름만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로 그 점이 이 책의 매력이자 힘이다.
우리는 늘 논리와 명료함, 실용성과 목적을 따지며 살아간다. 하지만 감정은, 존재는, 관계는 항상 명확하지 않다. 때로는 ‘말이 되지 않는 것’ 속에서 더 진실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말은 안 되지만 홍학의 자리』는 그 낯선 여정을 용기 있게 걸어가는 책이다. 그리고 독자는 그 여정을 따라가며 자신 안의 ‘홍학의 자리’를 찾게 된다.
마무리하며: 말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
정해연의 이 책은 단순한 에세이를 넘어선다. 그것은 한 사람의 내면 여행이자, 감정과 언어의 실험이고, 존재에 대한 조용한 성찰이다. 또한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위로를 주고 있다.
읽는 이로 하여금 삶의 언저리에 놓인 감정과 생각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책, 그리고 그 감정들에 ‘괜찮다’고 말해주는 책이다.
말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자신에게 말할 수 있게 만드는 힘, 그것이 『말은 안 되지만 홍학의 자리』가 가진 진짜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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