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사실과 신화 사이의 대화다.”
《트로이 이야기》(원제: The War That Killed Achilles)는 이 인용문을 대변하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 배리 스트라우스는 고대사 전문가로, 트로이 전쟁이라는 서사시의 전통을 역사적 사실의 가능성 안에서 다시 풀어낸다.
이 책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트로이 전쟁’을 단순한 신화가 아닌 실제 있었던 역사로서 바라보려는 시도다. 그러나 단지 사실 여부를 가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인간, 전쟁, 권력, 신화가 교차하는 지점을 현실에 맞게 섬세하게 조망한다.
전설에서 역사로, 신에서 인간으로
우리는 트로이 전쟁을 흔히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통해 기억한다. 아킬레우스, 헥토르, 헬레네, 파리스 같은 인물들은 서사시 속 영웅이자 신의 후손으로 등장하며, 트로이 전쟁은 인간 세계에 개입하는 신들의 분노로 점철된다.
그러나 배리 스트라우스는 다르게 접근한다. 그는 고고학 자료, 히타이트 문서, 미케네 유물 등을 바탕으로 트로이 전쟁이 기원전 12세기경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추적한다.
저자는 ‘트로이’가 단지 하나의 도시가 아닌 전략적 거점이자 동지중해 무역의 중심지였다고 본다. 그리스와 트로이의 충돌은 납득 가능한 경제적·지정학적 갈등으로 풀이된다.
이 지점에서 독자가 깨닫게 되는 사실은, 신들의 전쟁이 아니라 인간의 이기심과 권력 투쟁이 신화의 외피로 포장되었을 뿐이라는 것과 아킬레우스는 불사의 영웅이 아니라, 분노와 자존심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이다.
서사시의 안과 밖: 인간적인 전쟁 이야기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신화적 서사를 무너뜨리면서도 경외심을 잃지 않는 균형감각이다. 배리 스트라우스는 아킬레우스를 단지 전장에서 무쌍을 찍는 영웅으로 그리지 않는다. 그는 명예를 놓고 집단을 위협하며, 절친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에 무너지는 심약한 군인이다.
헥토르는 장군이자 가장이며, 그의 전사 장면은 인간적인 애틋함으로 가득 차 있다.
이처럼 작가는 서사시 속 영웅을 심리적·정치적 인물로 복원하며, 독자로 하여금 ‘그들이 살았던 시대’를 생생히 상상하게 만든다.
이러한 접근은 단지 역사적 재구성에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책을 읽으며 '전쟁이란 무엇인가'를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이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영웅의 이름은 남았지만, 수천의 무명의 병사들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트로이 목마는 전술이었을까, 허구였을까?
트로이 전쟁을 통해 오늘을 말하다
《트로이 이야기》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바라본다. 저자는 전쟁을 영웅주의로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쟁의 공포와 비극성을 분명히 짚는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 국가를 위해 희생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 한 여인의 납치가 대륙 전체의 전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 정당한 전쟁이란 과연 존재하는가?
특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전쟁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는 ‘현재의 문제’**다. 배리 스트라우스는 신화를 통해 인간 본성과 공동체, 권력의 작동 원리를 재조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의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역사와 신화 사이, 그 틈에서 빛나는 통찰
《트로이 이야기》는 단순히 “트로이 전쟁이 실화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그 질문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듯, 신화적 서사와 역사적 사실 사이의 틈을 메우며 더 깊은 인간의 진실을 보여준다.
우리는 종종 ‘진짜냐, 가짜냐’에 매달리지만, 이 책은 묻는다.
“진짜가 아니면, 의미도 없나?”
트로이 전쟁이 실제 있었든 없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수천 년을 건너 인류의 상상력과 도덕, 정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다. 이 책은 그것을 누구보다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마치며: 신화를 다시 읽는 힘
《트로이 이야기》는 역사서, 인문서, 문학 비평서의 성격을 모두 지닌 독특한 책이다.
특히 신화를 좋아하는 독자, 인류학이나 고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깊이 있는 통찰을 선사한다.
또한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는 이 책은,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한 철학적 텍스트이기도 하다.
만약 당신이 트로이 전쟁을 단순히 ‘헬레네를 두고 싸운 이야기’로 기억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 기억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아킬레우스를 초인적인 영웅으로만 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국, 우리처럼 흔들리고 분노하며 사랑했던 한 명의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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